“너희들은 돼지야.”
낡은 고정관념에 맞서는 통쾌한 선언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늘 입을 크게 벌리고 아내에게, 엄마에게 빨리 밥을 달라고 요구하고 소파에 기대 빈둥거리기만 한다.
피곳 부인 역시 직장에 다니지만 그 일은 가족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지 출근을 하기 전에도,
퇴근을 하고 나서도 집안일은 모두 피곳 부인의 몫이다.
결국 견딜 수 없어진 피곳 부인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나 버린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가정의 모든 가사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가사 노동은 당연히 여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피곳 부인들에게 떠맡겨져 왔던 것이다.
『돼지책』은 국내 출간 당시 이런 성별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책이 소개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 그 사이 남성들의 가사 참여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차이가 큰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늘 그렇게, 당연히 집안일을 해 주던 아내,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은 혼란에 빠진다.
자기들끼리 밥을 만들어 보지만 부엌은 엉망진창에 음식 맛도 끔찍하다.
그림자처럼 집을 돌보던 피곳 부인이 사라지자 아무도 청소나 빨래를 하지 않아 집은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피곳 씨와 아이들은 말 그대로 돼지가 되어 버린다!
앤서니 브라운은 남자들이 돼지로 변하고 집은 돼지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돼지 모양으로 변한 문손잡이, 돼지가 된 사진 속 얼굴, 돼지 콧구멍 모양의 단추 등 화면 곳곳에 숨겨진 돼지 모티프가 이야기의 무게를 덜고 웃음을 준다.
앤서니 브라운의 팬이라면 『우리 엄마』에도 등장하는 꽃무늬, 장면 곳곳에 숨겨진 명화 모티프 등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이미지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세 남자는 피곳 부인에게 애원한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피곳 씨와 아이들은 이제 집안일을 함께하기 시작한다.
설거지, 침대 정리, 다림질, 요리…… 모두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림책은 피곳 부인이 자동차를 수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자동차의 번호판은 SGIP 321, 거꾸로 하면 PIGS 123이다.
피곳 씨 가족은 이대로 해피엔딩을 맞은 걸까?
피곳 부인은 집에 머물기로 한 걸까?
앤서니 브라운은 위트 있는 결말로 독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생각해 볼 거리를 남긴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을 꾸리기 위하여 전체 구성원이 노력해야 함을, 그렇지 않으면 돼지와 다를 바 없음을 『돼지책』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