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완벽한 식사를 위한 곳”
어떤 주문을 해야 나의 완벽한 식사가 완성될까
딸기 디저트가 그득한 표지의 그림은 과하다는 거북함보단 예쁘다는 탐심을 자극합니다.
첫 장을 열면 아무 제약 없는 주문서가 놓여 있고, ‘완벽한 식사’를 위한 곳이라는 소개와 함께 레스토랑 핑크의 대문이 활짝 열립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이 레스토랑엔 누가 봐도 이상한 손님들로 가득합니다.
이지현 작가만의 섬세한 색연필 작업으로 그려진 실내 장식, 각종 요리와 식기들이 아기자기한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실상은 묘하게 꺼림칙하고 날카롭습니다.
손님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과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주문서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글 없는 그림책으로 편안하게 확장되는 이야기를 선보인 작가는 레스토랑 핑크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현실감 있는 글을 곁들였습니다.
있을 법한 메뉴와 없을 법한 요청 사항이 주문서에 적혀 있고, 손님들은 저마다의 캐릭터다운 대사를 떠듭니다.
이들의 식사 풍경을 들여다보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취하고 싶은 욕망, 남들보다 훌쩍 앞서고 싶은 욕망,
남들에게 매우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욕망 등 여러 종류의 욕망이 짐작됩니다.
또, 불신에 사로잡혀서, 우월감에 젖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알지 못해서 욕망을 누릴 수 없는 불안한 심리도 드러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 장소만이 환상일 뿐, 욕심에 빠진 캐릭터들의 태도가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이곳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끝없는 욕망의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어떤 주문을 요구하고 싶을까요?
“레스토랑 핑크 방문은 어떠셨나요?”
손님들의 선택에 달린 레스토랑 핑크의 이미지
레스토랑 핑크의 지배인은 그림책의 도입과 말미에만 입을 엽니다.
이곳에서 만족의 경지를 경험하라며 손님들을 환영하고, 원하는 대로 완벽한 식사를 마련해 주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손님들을 배웅하며 언제든 다시 찾을 것을 예고합니다. 이상한 손님들이 한바탕 빠져나간 레스토랑 건물엔 뿔이 달려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바람직하다고 여길 만한 이상적인 케이스를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삶의 원동력일 욕망 자체를 재단하려기보다는 그것을 지혜롭게 다루길 권유합니다.
내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그걸 담은 주문서는 어떤 모양일까.
맹목적인 요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나의 만족을 어디쯤 둘까.
바람직한 정답은 알고 있지만 자꾸만 고민하게 되는 이곳, 우리가 바로 레스토랑 핑크의 n번째 손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