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리움이 끼쳐올 때,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화가는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그리웠던 ‘그곳’을 떠올린다.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 영영 떠나온 곳. 점점 멀어지려고 서서히 지워버린 곳.”
이제는 그곳에 아무도 없지만 그곳으로 향한 것은 오랫동안 무겁게 지녀온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겨우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떠나왔지만 멀어지지 않았고,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은 그곳은 유년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고향집이다.
화가가 어릴 적 살던 집은 자전거포를 품은 이층집이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다시 찾은 이층집은 서점이 되어 있었다.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층 계단으로 올라간 화가는 엄마의 방이 있던 곳이 서가로 채워진 모습을 보며 깊은 회한에 잠긴다.
그 순간 서가 맨 아래 칸에 책 한 권의 크기만큼 비어 있는 틈이 화가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그 빈 자리를 오래 바라보며 아빠가 떠나간 가족을 기다리면서 품어왔을 깊고 아득한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오래 헤맨 마음이 머무는 곳
맞춤한 ‘책의 자리’
유년의 상처를 극복하고 마음의 자리를 찾으려는 한 인물의 오랜 고민과 고민이 묻은 찬찬한 걸음을 따라가다보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상처인 줄도 모른 채 오래 감춰두었던 아픔을 이제는 꺼내놓을 용기가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있다.
그 자리에 긴 시간에 걸쳐 여백을 채워넣은 책 한 권을 내려놓는다.
오래 헤맨 마음이 머무는 곳. 맞춤한 ‘책의 자리’이다.
나의 오랜 마음을 당신이 꼭 읽어준다면 좋겠다.
“누군가 비밀스레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