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by 이글랜차일드
마크 트웨인처럼 블랙 유머를 통해 세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더글러스 애덤스와 무라카미 하루키 등 수많은 대가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현대 반전문학의 태두는 누가 뭐라고 해도 Kurt Vonnegut Jr.입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그만 전선에서 낙오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게 되는데요, 그 기간에 연합군은 드레스덴에 사흘 밤낮으로 소이탄을 퍼붓습니다. 영국 수상 처칠이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핑계로 민간인 거주지까지 무차별 폭격을 가했고 드레스덴에 떨어진 폭격으로 무려 13만5천 명이나 죽습니다. 유럽 최대 규모의 학살인 'firebombing of Dresden'이 벌어진 겁니다. 그는 이런 참혹함을 겪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반전 작가가 됩니다.
《Slaughterhouse-Five》는 당시 그가 갇혀 있던 도살장의 이름입니다. 지하에 있던 도살장을 개조해 만들었기에 그는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요, 그 경험을 살려 쓴 책이 바로 《Slaughterhouse-Five》입니다.
이 정도만 설명하면 마치 전쟁문학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정확한 장르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SF소설입니다. Billy Pilgrim이란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하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하죠. 그렇게 외계인을 만나서 알게 된 것은 지구인들이 얼마나 몰상식에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파괴적인지입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전개에 도저히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것은 슬픔입니다.
국내에서도 번역본이 출시됐지만 절판이고요, 무엇보다 블랙코미디는 원서로 읽지 않으면 맛이 살아나지 않으므로 원서로 보시길 권합니다. 참! 이 작품은 1972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는데요, 쉽진 않겠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피아노 연주가 Glenn Gould라는 것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히 하니까요. ^^
photographed by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