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으면 보이는 많은 것들,
선을 넘어야 볼 수 있는 많은 것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입니다.
《국경》의 글을 쓴 구돌 작가는 20대 초반에 28개월,
그러니까 2년이 조금 넘는 긴 기간을 배낭여행자로 지내면서 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일은 섬이나 다름없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그야말로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습니다.
국경을 배나 비행기가 아니라 두 발로 걸어서 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까닭이었지요.
그 발견을 시작으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작가는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경 검문소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그 나라의 ‘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 주었고,
국경의 모습은 이웃한 두 나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작 지도 위의 선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화폐, 언어와 문자, 음식, 복식, 인종, 종교, 심지어는 운전석의 위치까지…….
물론 국경이 그저 지도 위의 선에 지나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아시아인의 얼굴에 유럽인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러시아어로 소통하는 중앙아시아가 바로 그런 곳이었지요.
여행을 멈춘 뒤에도 국경에 대한 생각은 작가의 머릿속에 화두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 화두를 어린이들과 함께 풀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입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의 기억만으로 책을 만들 수는 없기에,
수년에 걸쳐 수십만 장의 사진을 모으고 수많은 자료를 읽으며 각기 다른 면에서 대표성을 지닌 24개의 국경을 가려 뽑았습니다.
그런 다음 현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려주려 노력하며 원고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일, 내일의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하는 일은 오롯이 어린이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림을 그린 해랑 작가는 구돌 작가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아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답게,
가슴 서늘한 풍경은 가슴 서늘하게 그림에 담았습니다.
어느 한 장면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일 없이, 그럼에도 아름답게 말이지요.
그러나 단 한 장면, 한반도의 미래상만큼은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주관과 바람을 한껏 담아 완성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이로운 경험을 예사롭게 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두 작가가 오래 공들여 만든 이 책이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 오래인 독자들을 잠시나마 국경 너머 저 먼 곳으로 데려다주기를,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내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