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마치 노인 학대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제목과 독특하고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 때문에 보지 않았음에도 마치 본 것만 같은 영화로 널리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래 소설이 원작입니다.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현대 미국문학의 대표작가 Cormac McCarthy의 2005년 작품으로, 툭툭 끊어지는 단문과 쉼표 따옴표 등 인용부호 없이 주고받는 캐릭터들의 대화 그리고 핏빛 자욱한 총격 장면이 굉장히 특징적입니다. 영화화한 코헨 형제는 사실 연출을 준비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보고서 당장 달려들었다고 하죠. 그리고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상을 네 개나 석권하게 됩니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와 소설의 큰 차이는 없습니다. 우연히 갱들의 총격전을 목격한 전직 베트남 참전용사가 그들이 모두 죽은 후 남은 거액의 돈 가방을 챙겨갔다가 악마와도 같은 살인청부업자에게 쫓기게 됩니다. 그리고 뒤늦게 이들을 뒤쫓는 보안관이 등장하고요.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은 얼핏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꼬집는 느낌을 주는데요, 원문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윌리엄 예이츠의 시 ‘Sailing to Byzantium(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입니다. 예로부터 연륜을 갖춘 노인은 상식과 지혜를 상징하고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이제 상식과 지혜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보안관처럼 말입니다. 세상은 동전 던지기로 생명을 빼앗는 살인청부업자처럼 우연의 연속성에 있다고 강변합니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핵심을 남기고 가지치기를 했으나, 소설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섬세하게 조형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화와 소설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처음 접했던 매체를 다시 한번 보게 만들고 맙니다. 그만큼 상호보완적이거든요. (다만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악을 상징하는 하비에르 바르뎀만큼은 독보적입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힘껏 살아온 나날과 경험이 무용해지는, 존재 가치의 상실일 겁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안기는 작품입니다.
웬디북리뷰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