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
3. Life, The Unniverse And Everything
4.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5. Mostly Harmless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이 나온 영화가 있고, 나오지 않은 영화가 있다.” 케빈 베이컨 대신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 농담에 편승해서 홍콩영화 마니아들은 “세상에는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다.”고 열변을 토했으며, 국내 영화 마니아들도 대표선수를 차출해 “세상에는 명배우(명계남)가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다.”를 외쳤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국식 농담인데요, 이런 구분이 SF에서도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SF팬이 있습니다. Douglas Adams의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은혜를 어떤 식으로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걸작의 태생을 잠시 살펴보면 이해가 될 지도 모릅니다.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1978년 영국 BBS 라디오 코미디 드라마에서 비롯됩니다. 그 이후 만화, 연극, 게임, TV쇼 등 모든 매체의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좀 쉬운 예를 들어보면, SF 영화 중에 뜬금없이 ‘42’라는 숫자가 화면을 채울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스위스의 최초의 SF영화라는 ‘Cargo(2009)’에서는 주인공들이 우주정거장인 ‘Station 42’를 목적지로 항해를 하는 내용입니다. 이 ‘42’는 바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요, 정말 엄청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Magrathea라는 행성에서 ‘Deep Thought(대충 ‘깊은 생각’이라고 치고)‘라는 슈퍼컴퓨터를 개발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죠.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해답(the ultimat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을 내놓으라고요. Deep Thought는 시간을 달라며 50만 년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Deep Thought가 50만 년 동안 깊이 깊이 생각한 끝에 내놓은 답은 바로 “42”였습니다. 인생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42라니요. 얼마나 기도 안 찰까요. 시작할 때 이야기했듯 이 책의 태생은 코미디 라디오 드라마입니다. 페이지마다 농담으로 도배가 돼 있습니다. 급기야 우주의 신비와 인생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답이 42라고 하네요. 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농담입니다.
저자 Douglas Adams는 실제로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우주이론과 신학과 철학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42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열심히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종래에는 ‘조크였다’로 결론지었다고 하죠. ^^
신학이 언급된 김에,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는 기독교 맹신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창조주의 마지막 전언이 적혀 있다는 별이 있습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로봇 Paranoid Android(라디오 헤드의 노래 Paranoid Android가 바로 이 로봇입니다)가 마침내 그 곳에 도착하죠. 그리고 창조주가 남긴 전언을 확인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We apologize for the inconvenience)” 흔히 그레이드가 다르다라고 하는데, 농담도 이 정도 되면 경전의 수준입니다. ^^
아, 참! 책에 등장하는 히치하이커들은 타월이 필수품입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어떤 의미이냐고 묻던데, 책에서는 생존의 필수품을 모두 챙긴 능력 있는 나그네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고 보여지네요.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인간의 의지 또는 소중한 무언가 또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히치콕식 맥거핀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할 수 없고요. ^^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첫 페이지부터 최소한 10군데 이상 오역이 있습니다. 말을 매끄럽게 번역하는 ‘의역’이 아니라 잘못 해석한 ‘오역’입니다. 능력이 된다면 원서를 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1권이 지난 2005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도 개봉됐는데, 소극장에서 조용히 개봉해 마니아들 사이에서 오래오래 인기를 끌고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뭐, 그 덕분에 책이 좀 더 알려지기는 했죠. 이게 오히려 섭섭하기도 한데, 사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무엇인가가 백주 대낮에 공개된 기분인 겁니다. 아쉬움……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