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숲에 새로이 거처를 마련한 백인소년 매트와 그의 아버지, 아빠는 엄마와 딸을 데리러 잠시 도시로 가고 매트 혼자 황무지에 남았다. 가족이 오기까지 홀로 기다려야 하는 몇 주 동안 의 시간이란 무척 고달프다. 급기야 벌에게 쏘여 사경에 처하는데,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치던 인디언 조손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백인소년 매트와 인디언 소년 아틴은 그렇게 만났다.
백인들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아틴이기에 매트도 경계하지만 어린 소년들의 감성은 서로를 이해하게 하고 우정을 쌓는다. 또한 매트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백인들에 의해 쫓기다시피 서부로 향하는 비버족 아틴을 따라 서부로 갈 것인가…….
《The Sign of the Beaver》의 배경은 18세기 후반의 북미대륙입니다. 영국과 인디언 사이의 전쟁이 벌어진 직후입니다. 단지 과학기술이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인디언 문명을 야만으로 취급하고 인디언 또한 짐승처럼 사냥을 했던 시대, 백인우월주의로 인한 폐해가 극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The Sign of the Beaver》의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백인소년 매트가 인디언 소년 아틴에게 고전 걸작 중에 하나인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크루소'를 읽어줍니다. 매트는 로빈슨크루소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 싶어 무심결에 아틴에게 읽어주지만 아틴은 내용을 듣고 무척 화를 냅니다.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의 많은 학자들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자신만 문명이며 나머지는 야만이라고 취급하는 그 행태가 《The Sign of the Beaver》의 이야기 배경이며, 두 소년의 간극이기도 합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 가느냐 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입니다. 말로만 지구촌을 외칠 뿐 서구 열강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동남아의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대해서는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식의 이중적 자세, 참 부끄러운 일이죠.
뉴베리 메달을 받은 작품이 상당히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무거운 주제라도 결코 무겁게만 풀어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The Sign of the Beaver》도 아이들의 우정을 즐겁게 지켜보는 사이 사라져 가는 문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롯한 다양한 시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 Sign of the Beaver》는 ‘Keeping the Promise’라는 제목의 TV 영화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by 이글랜차일드